[1회] 프롤로그: 콘크리트 틈새를 뚫고 나온 녹색 혁명
안녕하세요. 도시의 흙과 첨단 기술 속에서 미래 농업의 희망을 일구는 호미농부입니다.
며칠 전, 해 질 녘에 잠시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제 창밖으로는 오늘도 어김없이 빽빽한 아파트와 빌딩 숲이, 저마다의 불빛을 밝히며 인공의 산맥을 이루고 있었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자동차 소음과 하루 종일 달아오른 아스팔트가 내뿜는 열기.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도시’의 익숙하고도 치열한 풍경입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옆 동 아파트 5층, 에어컨 실외기 옆에 덩그러니 놓인 스티로폼 상자에서 자라난 새파란 대파 한 줄기였습니다.
그 대파 한 줄기가 제게는 마치 도시의 심장을 뚫고 솟아난 깃발처럼 보였습니다. 보도블록 틈새를 기어코 비집고 올라와 노란 꽃을 피우는 민들레처럼, 아파트 베란다의 낡은 난간을 생명줄 삼아 타고 오르는 방울토마토 넝쿨처럼. 도시의 가장 단단하고 차가운 틈새를 뚫고, 지금 아주 조용하지만 강인한 ‘녹색 혁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왜 우리는 다시 흙으로, 우리 곁의 식물로 돌아가는가?
언제부턴가 우리는 식탁에 오르는 음식의 고향을 잊고 살았습니다. 마트 진열대에 놓인 브로콜리 한 송이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타국의 밭에서 출발해, 수많은 사람의 손과 복잡한 물류 시스템을 거쳐 내 손에 오기까지의 여정에는 무관심했죠. 포장지에 적힌 낯선 지명과 알 수 없는 화학처리 과정은 우리와 음식 사이의 거리를 아득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우리는 그 거대하고 복잡한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지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의 기록적인 폭염이 밭을 말라붙게 하고, 올여름의 게릴라성 폭우가 물류 창고를 마비시켰을 때, 마트의 신선식품 코너는 텅 비고 채소값은 천정부지로 솟았습니다. ‘푸드 마일리지(Food Mileage)’라는 단어가 더 이상 환경운동가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나의 ‘식량주권(Food Sovereignty)’이 타인의 손에 위태롭게 놓여 있음을 모두가 실감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후 위기와 식량 안보의 시대에 우리가 우리 도시에서 직접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어야 하는 첫 번째, 그리고 가장 절박한 이유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연결’의 회복입니다. 현대 도시는 ‘디지털의 역설’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SNS를 통해 지구 반대편의 소식은 실시간으로 접하지만, 정작 현관문 너머 이웃의 얼굴은 모른 채 살아갑니다. 편리함의 대가로 얻은 것은 깊은 소외감과 단절감이었죠.
도시농업은 이 단절의 고리를 잇는 놀라운 접착제가 됩니다. 인간의 유전자 깊숙이 각인된, 자연과 연결되고자 하는 본능 ‘바이오필리아(Biophilia)’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옥상 텃밭에서 열린 첫 오이를 수줍게 건네는 것으로 어색했던 이웃과의 대화가 시작되고, 아이들은 스마트폰 화면 대신 흙 속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보며 생명의 순환과 소중함을 온몸으로 배웁니다.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그 투명한 과정을 직접 목격하며 잃어버렸던 신뢰를 회복합니다. 음식과 나, 이웃과 자연, 그리고 과거와 미래를 다시 연결하는 것. 이것이 바로 도시농업이 가진 따뜻하고도 강력한 치유의 힘입니다.
텃밭 상자에서 수직농장까지, 이것은 모두의 농업입니다
‘농업’이라고 하면 여전히 광활하게 펼쳐진 평야 한가운데 육중한 트랙터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21세기의 도시농업은 그 고정관념의 틀을 완전히 깨부수고 있습니다. 그 세계는 훨씬 더 다채롭고, 창의적이며,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죠.
볕 좋은 창가에서 키우는 작은 허브 화분은 나만의 향신료를 선물하는 ‘미니 허브 농장’이 되고, 아파트 베란다에 만든 넝쿨 식물은 여름날의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는 ‘살아있는 녹색 커튼’이 됩니다. 버려졌던 건물 옥상은 도시의 열섬 현상을 완화하고 꿀벌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하늘 위 오아시스’로 변신합니다.
그리고 제가 밤낮으로 연구하는, 외부 환경과 완전히 차단된 실내에서 LED 빛과 영양액만으로 365일 내내 청정한 채소를 길러내는 수직농장(Vertical Farm)은, 날씨와 관계없이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도시의 식품 공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땅의 크기나 농사의 방식이 아닙니다. 생명을 기르고자 하는 마음과 작은 실천, 그리고 낡은 생각을 거부하는 상상력만 있다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농부가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떠날 흥미진진한 여정
그래서 저는 이 연재를 통해 여러분을 흥미진진한 녹색 세계로 초대하려 합니다. 앞으로 14번의 여정을 더 떠나면서, 우리는 함께 묻고 답을 찾아 나갈 것입니다.
- 전쟁의 포화 속에서 어떻게 텃밭이 희망의 상징이 되었을까?
- 뉴욕의 가난한 동네를 바꾼 청년 농부들의 아이디어는 무엇이었을까?
- 국가의 명운을 걸고 수직농장에 투자하는 싱가포르는 과연 도시의 식량을 책임질 수 있을까?
- 물고기와 채소를 함께 키우는 아쿠아포닉스는 어떻게 작은 생태계를 이룰까?
전 세계의 흥미로운 도시농업 현장을 생생하게 전해드리는 것은 물론, 호미농부가 직접 땀 흘리며 깨달은 도시 속 자연농법의 지혜와 첨단 스마트팜 기술의 원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와 문화를 만드는 방법까지 아낌없이 나누겠습니다.
이 연재는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닙니다. 콘크리트 도시의 미래를 녹색으로 물들이고, 우리 각자의 삶을 더 건강하고 풍요롭게 만들자는 하나의 ‘제안’이자 ‘초대장’입니다.
오늘, 퇴근길에 아파트 화단을 한번 들여다보시겠어요? 혹은 마트에서 사 온 대파의 뿌리를 잘라 작은 컵에 물과 함께 담가보는 건 어떨까요? 위대한 혁명은 언제나 가장 작은 시작에서 비롯되니까요.
저 호미농부와 함께, 우리 곁에서 조용히 시작된 이 위대한 혁명의 여정에 함께 하시길 고대합니다.